작가의 검은색의 그림은 다양한 빛을 흡수하여 깊고도 무한하고 고요합니다.
더불어 김정환 작가가 그려내는 검은색은 어둠과 음습함 등으로 다가오지 않고,
깊은 바다나 우주의 공간을 상기시켜 줍니다.

그는 유년기 이후 동양의 전통 예술인 서예를 익혀 오랫동안 검은색의 감각을 갈고 닦은 진지한 작가입니다. 그의 작품에서는 먹의 윤곽이 종이에 스며들어 묘미(妙味), 기운(氣韻) 등의 표정이 드러나고, 우연성을 살려 필연적인 표현으로 창출되고 있습니다. 작가는 매재의 성질을 그대로 살려 마음의 깊이와 기품 등을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이처럼 내적 필연성과 심적 균형의 갈등에서 창출된 그림은 직감과 실감의 교착(交錯)이 초래한 정신세계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작가는 "침묵이란 단지 말을 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가슴속을 꽉 메운 그 생각들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말합니다. 침묵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경지까지 올라가 있는 초월성을 의미합니다. 이에 반해 소음이나 말하기는 나와 세속적 세계를 더욱 가깝게 연결해 줍니다. 더불어 작가는 "우리는 초월성을 찾아가기 위해 아니 단순히 소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자기만의 침묵’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끄러운 세상이다.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다보니 세상이 온갖 소리로 떠들썩하다. 역설적으로 침묵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침묵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침묵을 하나의 시어(詩語)처럼 간결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이미지를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것은 마음 속의 메아리와 울림이기도 하고, 나만의 시선(視線)이기도 하다. 작업을 하는 동안에는 스스로를 비춰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나에 있어 작업이란 검은색을 통해 침묵의 심연에 다가서는 여정인 것이다.


나의 작품 제목은 '묵음(默吟)'이다. 이 말을 한문 사전에 찾아보면 '소리 없이 시를 읊다'라고 나온다. 작업에 집중하는 과정에 속에서 예외 없이 ‘묵음’(默音)의 순간을 경험한다. 말 그대로 몇 분 동안 혹은 그보다 길게 아무 소리도 없는 고요함 속에서 놓이게 되는 것이다. 캔버스와 나 사이의 묵음(默音)은 작업이 진행되는 내내 긴장감을 불러오기도 한다. '작가인 나는 묵음(默音)으로 말하는 방법을 익혀야 하고, 감상자들은 묵음(默吟)으로 표현한 것을 들을 줄 알아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