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주하 작가의 양귀비 작업은 언뜻 만개한 꽃들의 향연을 연상케 한다. 다채로운 색의 강렬함과 유려한 곡선이 화려하게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을 두고 가만히 그림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미묘한 감정의 변화들을 느낄 수 있다.
 
먹물을 여러 겹 입힌 장지 위에 분채 물감을 뿌려 완성된 꽃들은 섬세한 농담 차를 두면서 저마다의 온전한 존재를 드러낸다. 겹겹이 쌓아 올려진 꽃잎들은 서로를 비추면서 어우러지고 또 스스로를 영롱하게 내보인다. 투명하게 중첩된 꽃잎들이 어두운 심연으로부터 마침내 피어나는 존재의 빛을 발하는 것이다. 이렇게 빛이 뿜어져 나오는 듯 화려하고 부드러운 표면은 보는 이들의 감각을 자극한다.
 
꽃들의 형태는 규칙적인 패턴을 이루는 듯하지만 이는 단지 단조로운 질서를 위함이 아니다. 그 안에서는 꽃 핌과 소멸, 빛과 어둠, 고난과 성장이 순환하는 공존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 삶의 아름다움과 슬픔이 작가의 작업 안에서 등가 하는 것이다. 꽃이 피기까지의 아픔과 시련을 품고 있는 심주하 작가의 양귀비 꽃들은 깊은 어둠을 뚫고 피어난 만큼 강인한 생명력과 에너지를 발한다. 그 힘으로부터 우리는 다시 삶의 원동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작가노트>

봄은 온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향긋한 봄 냄새가 코끝을 스치며 그렇게 또다시 봄은 찾아온다. 화려하고 다채롭게 피어나는 모양의 꽃들은 우리의 인생과 무척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지 위에 피어나는 꽃들은 각자 저마다의 온전한 존재를 드러낸다. 인고의 시간을 겪지 않고 피어나는 꽃은 없다. 꽃은 피고지고 계절은 순환한다. 희로애락을 겪어가며, 그렇게 우리의 인생은 흘러간다. 어느 날은 먹구름이 끼고 비바람이 불어 온종일 흐린 날도 있고 비바람이 몰아칠 때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비바람도 언젠가는 잦아들고 봄이 찾아오면 꽃봉오리를 맺고, 그 자리에 아름답게 꽃을 피운다. 추위가 잠시 담대한 몸을 깨우면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우리의 불안과 두려움도 떨쳐 내게 된다. 봄은 우리에게 새로운 시작을 상기시키며 언제나 다시 찾아온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삶의 가치를 깨닫게된다. 과거를 그리워 하던 나는 봄의 가장자리에서 조만간 다가올 행복할 미래를 기대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