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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A D Y, 어른여자
들려주고 싶었던
그녀의 이야기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두 아이의 엄마, 어른여자가 되어 있었다
스물 두 살, 세상에 나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철 없고 어리기만 했던 나는
처음으로 엄마의 품을 떠나 인도라는 낯설고 두려운 땅에 발을 내딛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언젠가 내가 다시 돌아가야 할 곳이 되어버릴 만큼
내 인생을 뒤바꿔놓은 크나큰 사건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인도에서 평생을 함께할 남편을 만났다는 것 만으로도 모자라
아직도 내 일상을 지배하는 짙은 향기와 잔상을 남겨준 곳이니까
외로웠지만 즐거웠고, 위험했지만 아름다웠던 그곳 인도.
인도에서 살다 한국으로 돌아와 첫째 딸을 낳았다.
곧 다시 인도에 돌아갈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이후로 다시 가보지 못한 채 한국에서 8년이란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그 동안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이들은 모두들 각자의 인생을 살아내느라 바빴고
전에 느껴본 적 없는 밀물처럼 밀려오는 감정들을 아이로부터 느끼고 배우며
때로는 울기도 했지만 전에 없는 행복을 마주하였다.
하지만 그런 달콤함과 행복속에서도
나는 가끔 뭔가 길고 어두운 터널 안에 갇혀 있는 기분이 들곤 했다.
그럴 때 마다,
연필을 들고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하얀 종이 위에 나의 이야기를 옮겨나갔다.
그림을 제대로 배운 적은 없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손이 움직이는 대로 채워나갈 뿐이었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힘들었던 하루를 그림을 통해 위로 받았고,
긴 터널 끝에 불빛이 보이는 듯 했다.
불빛을 향해 터널을 빠져나가듯, 그렇게 나는 붓을 잡고 캔버스에 나만의 이야기를 채워나갔다.
나이가 되면 자연스럽게 어른이 되는 건 줄 알았지만
어른여자가 되는 건 말처럼 쉽지 않았다.
스물 셋, 늦잠도 자고 싶고 밤 늦게까지 친구들과 놀고 싶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지켜야 할 가족과 많은 책임이 뒤따르는 자리에 있었다.
새로운 가족과 새로운 삶을 사는 하루하루가 즐거웠지만,
온전한 가족이 되기 위한 그 시간이 늘 쉽지만은 않았다.
가끔 이 모든 게 짐스럽게 느껴지기만 했고, 오롯이 내가 이겨내고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
갑갑하게 느껴지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힘이 들었던 것만은 아니다.
곁에서 누구보다 사랑해주는 가족들이 있었고,
언젠가는 늘 내 이름 석 자로 당당하게
하고픈 일을 하며 살아가라고 응원해준 ‘시엄마’가 있었다.
내가 보아온 어느 여자보다 멋지고 똑똑한 우리 어머님.
어머님, 그리고 그 누구보다 많은 희생을 하며 살아온 나의 엄마,
그녀들을 비롯한 세상의 모든 엄마가 나, 그리고 여자라는 이름은 뒤로하고
빛나던 청춘과 하늘의 별처럼 가득했던 꿈도 기약 없는 뒤로 미뤄두었다.
그림을 그리면서 나 스스로 가장 큰 위안을 얻었듯이
가족과 남편을 위해 살아가는, 아름답지만 무거운 인생을 위로하고 싶었다.
그대가 가장 멋지고, 아름답다고.
그림을 그리며 나 스스로에게 주문을 건다.
오늘은 가장 행복한 시간,
오늘의 이야기는 모두에게 들려주고픈 가장 즐거운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그리자, 고.
번듯하고 마땅한 작업실은 아니지만
오늘도 식탁 한 켠, 방 한구석에서
붓을 잡고 그림을 그린다.
어른여자가 되어간다.
정미남 (정민아, JUNG MEENA)
한국외국어대학교 인도어과 BRICs 경제학사 졸업
EXHIBITION
2011년 9월 7일-9월 13일 관훈동 갤러리스카이연 Microcosmos 展
2011년 10월 18일-10월 24일 평창동 갤러리그림안 Illustar 展
2011년 12월 신사동 드로잉 11 크리스마스 전시
2014년 2월 4일-10일 헤이리 갤러리그림안 꽃으로물들다 展